[삼국유사 흔적을 찾아서] (57)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운문사 |
삼국유사 빚은 정갈한 기운 앳된 여승의 맑은 독경소리 |
/ 글사진 이재호 기행작가 |
2007/06/07 035면 08:22:12 |프린터 출력 |뉴스 배달서비스 |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련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이 있다. 엄마와 누나는 행복한 존재인데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죽음과 이별을 떠올려서일까? 청도하면 지금같이 소싸움, 감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고 예전에는 아득한 구름 속에 머무는 운문사만 떠올랐다. 운문사를 떠올리며 얼마나 가슴 조였던가. 그 이름만으로 나는 가슴 떨리고 설레었다.
구름처럼 나그네 되어 전국을 떠돌아다녀 사연 없는 곳이 없지만 구름의 운문사는 추억으로 아른거린다. 내가 꿈에 그리던 운문사를 처음 찾은 것은 80년대 초였으니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답사 객들을 데리고 얼마나 많이 왔던가.
일연 스님도 71세의 나이에 마지막 거처로 삼고 운문사에 왔으나 몽고의 말발굽 아래 신음하면서 일본 원정을 위해 경주에 상주한 지친 왕 곁으로 가야했다. 운문사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처음 쓰기 시작한 아주 특별한 곳이다. 그래서 삼국유사에 운문사와 관련해서는 길고도 자세하게 많이 써놓았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어떤 심정으로 집필했을까?
운문사 가는 길
경주에서 운문사는 먼 거리가 아닌데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어려워 아득히 먼 곳으로만 느껴진다. 마침 '울산수필' 문학 동인이 1박2일 문학기행 중 1박을 우리집 수오재에서 하게 되었다. 첫날은 김성춘 시인의 문학특강에 이어 나의 안내로 경주 밤 기행을 했고 다음날 동리목월 문학관 관람 후 청도 이호우, 이영도 선생 생가 방문을 했다.
청도는 글자 그대로 산수가 푸르고 맑다. 싱싱한 자연을 아낌없이 가슴에 담았다. 일행들과 이영도 생가 들렀다 점심 먹고 헤어지고 나는 청도 운문사로 향했다. 울산수필 회원으로 같이 왔던 울산대 정민자 교수가 운문사까지 동행을 해주어 쉽고 편안하게 갔다. 매표소 안부터는 대개의 우리나라 절이 그러하듯 거대한 소나무 군단이 줄지어 반겨준다. 소나무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이리저리 굽이쳐 흐르는 곡선은 말 못할 아름다움을 던져준다.
거대한 소나무 군단을 지나 조금 더 가면 길 옆에 원광(555~638) 스님의 세속 5계비를 세워놓았다.
갑자기 초등학교 6학년 때가 생각난다. 근엄하고 무서운 담임선생님이 화랑의 세속오계를 외울 수 있는 학생은 손을 들어보라 했다. 서로 쳐다보면서 일순 쥐죽은듯 고요한 침묵이 흘렀고 긴장이 감돌았다. 단 한 명도 들지 않아 나 혼자 들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러워 살며시 손을 겨우 반쯤 들었다가 머리 숙여 엉거주춤거리고 있었다. 지금이야 많이 둔탁해졌지만 암기력이 대단했던 나는 부끄럽고 미안해하면서 사군이충(事君以忠)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고, 사친이효(事親以孝) 어버이를 효로써 섬기고, 교우이신(交友以信) 벗은 신의로 사귀고, 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지 않으며, 살생유택(殺生有擇) 죽일 때는 가려서 죽인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11년 동안 중국(수나라) 유학 갔다 이 운문사(옛 가슬갑사)에 있던 원광 스님께 귀산과 추항 두 화랑이 찾아온다. "속된 선비들은 무지몽매하여 아는 것이 없으니, 한 말씀만 해주시면 평생토록 경계로 삼겠습니다."
이에 원광법사는 "불교에는 보살계(菩薩戒)가 있고 거기에 따로 열 가지가 있으나, 너희들은 다른 사람의 신하된 몸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 지금 세속에는 다섯 가지의 계(세속오계)가 있다"며 알려준 것이다.
이해 안 가는 부분을 귀산과 추항이 질문한다. "다른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살생을 가려서 하라는 것만은 잘 알지를 못하겠습니다." 원광 법사는 "육재일(六齋日)과 봄, 여름에는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고, 이는 시기를 가리라는 것이다. 부리는 가축을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 소, 닭, 개를 말하는 것이다. 미물을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 고기가 한 점도 되지 못하는 것을 말하니, 이는 대상을 가리라는 것이다. 또한 죽일 수 있는 것도 꼭 필요한 양만큼만 죽이고 많이 죽이지는 말라. 이것이 곧 세속의 좋은 계이다."
일요일 오후이지만 운문사는 대도시와 떨어져 있어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속의 사람들도 행복한 얼굴로 오고간다.
단정한 그리움의 북대암
운문사 여러 암자 중 깊고 깊은 계곡 들어가 가파른 산길 올라가는 사리암과 얌전히 앉아 운문사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북대암에만 오르면 어렴풋이 운문사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북대암을 올랐다. 다시 포장한다고 벗겨놓은 길은 운치가 사라졌지만 주위의 숲들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한 모퉁이 돌아서자 거대한 바위가 마치 동양화에서 도끼로 퍽퍽 내리찍어 놓은 듯하다는 부벽준(斧壁埈)의 기법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가파른 길과 200㎜ 카메라 렌즈까지 든 내 가방으로 인해 발길은 무거웠지만 바람이 밀어주어 시원하고 가볍게 올랐다.
"마음을 비우면 모두가 편안하리라"고 써 놓은 극락교에 이르니 그늘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 그야말로 극락이었다. 때 맞추어 바람 소리 스치며 흐느끼고, 산새들 맑게 우짖는다.
극락교에서 뒤돌아보니 운문사가 자신의 속살을 보여준 듯 수줍어하고 있었다. 북대암 근처에 오르자 좁은 오솔길은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바람은 시원한데 예쁜 참나무에 달린 '불온수거함 청도경찰서'라고 쓰인 박스가 현실감을 일깨워준다. 극락 안에도 이념이 존재하는가 보다.
절 입구에 막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경 낀 비구니의 목탁 소리가 울린다. 목탁 소리는 꺼벙한 거북이 입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더욱 청량했다.
북대암은 거대한 남성적인 바위 아래 정갈하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관음전 앞에 서서 이 모든 것이 그냥 고마워서 앙증스럽고 귀여운 부처님께 한참을 머리 숙여 합장했다.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내려다 본 운문사는 웅장, 엄숙,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운문사는 사방을 거대하게 둘러친 온 산들을 온 정성을 다해 부드럽게 빨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산새는 울고 바람은 부드러워, 고요한 내 마음도 깊은 숲의 잔잔한 호수가 되어 자연과 인간, 문화를 생각하며 사랑과 예술, 아름다움과 감동을 생각하고 있었다.
해우소 가는 길도 정갈했고 담도 울도 굴뚝도 모두모두 단정했다. 고추밭에 얼기설기 세워놓은 나무 지줏대는 예술적 감각으로 세워놓았다. 지난 주에 갔던 남성적인 통도사와 비교되었다. 통도사의 여러 암자들은 보통의 절보다도 커서 암자다운 소박한 맛이 없어졌는데 운문사의 여성적인 북대암은 암자다웠다. 역시 남자보다 여자가 아름답게 가꾸고 정리정돈을 잘하는구나.
나는 하염없이 운문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대암 뜰 앞의 벤치에 앉아 여기 북대암같이 정갈하게 꾸밀 줄 아는 한국 여인들의 예술적 감각에 가슴을 휘감는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맑은 암자를 찾아 그냥 머물러도 지치고 혼탁한 영혼은 맑아질 것이다. 해는 서산에 기우는데 칠성각 언덕에는 앳된 여승이 들릴 듯 말 듯 독경을 흥얼거리며 잡풀을 뽑고, 그 아래 빨랫줄에는 희멀건 회색이 감도는 여승의 저고리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내 마음도 허공에 실어 보냈다. |
[삼국유사 흔적을 찾아서] (58) 침묵으로 흐느끼는 운문사 |
끝도 없이 굽이치는 계곡길 문득 영혼의 한자락을 보다 |
/ 글사진 이재호 기행작가 |
2007/06/14 035면 10:18:21 |프린터 출력 |뉴스 배달서비스 |
늦은 오후 사람 하나 없는 청신암에 이르니 한 줄기 청신한 바람이 불어온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도는데 산 뻐꾸기 긴 여운을 안고 목탁소리처럼 울린다. 입구에는 긴 연륜의 느티나무가 줄지어 있어 어느 옛 마을 어귀에 들어가는 것 같다. 산길 오르는 맛도 없이 곧바로 암자가 나와 아쉽지만 얌전하게 앉아 있는 청신암은 여승도 보살도 없이 한 줄기 바람으로 나그네를 맞이해 준다. 20종류가 넘는 화초에서 은은한 향이 퍼지는데 맑은 인동초 꽃은 숨 막히는 절정의 향기를 뿜어낸다. 청신암을 뒤로하고 산사의 암자 맛이 나는 내원암으로 향했다. 이 내원암 가는 길은 어느 산사 못지않은 낭만이 배어난다.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가는 길과 부안의 내소사 가는 빽빽한 전나무 숲길은 의지력 곧은 남성적 길이라면, 이리저리 휘어지는 내원암 가는 산 오솔길은 여인의 오묘한 자궁 같이 낭만이 고여 있는 아기자기한 설렘의 길이다. 상원사 오르고, 내소사 가는 길이 급한 물살이 거침없이 콸콸 쏟아지는 계곡물이라면 내원암 가는 길은 실개천 돌 틈으로 여울지게 소리 없이 흐르는 개울물 같다. 영혼이 맑거나 착한 마음 순수한 열정을 가진 향기로운 사람과 도란도란 걸어가면 가슴 벅찬 사랑의 뜨거운 입김이 허공을 울릴 것이다. 두어 모퉁이 돌아가자 길 위에 꿩 한 마리가 길 안내라도 하듯이 총총총 바삐 걸어간다. 내원암 가는 길은 단풍나무 등의 활엽수들이 많아 가을의 정취도 대단하다. 그러나 지금은 풋풋한 신록이 익을 대로 익어 더 이상 주체 못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목 놓아 통곡하는 듯하다. 여인의 하얀 살결 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길게 길게 산 오솔길을 오르자 내원암은 자궁 같은 무릉도원 속에 묻혀 있었다. 약수터에서 물 한 잔을 먹고 암자로 갔다. 암자는 겹겹이 둘러 쳐진 거대한 병풍의 품 안에 놓여 있었다. 우리나라 스님들도 이제는 자연과 건축의 유기적 관계를 알고 종합적인 문화 안목도 키워야 된다. 최소한의 예의로라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절의 역사와 건축, 미술, 공예, 조각, 서예, 조경, 자연과 환경 등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되는데 옛 스님들은 잘 알았다. 원래 절과 정자 서원의 강당은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풍광을 중심으로 삼아 지었다. 그러므로 절의 중심되는 건물에서 부처가 앉은 자리는 제일 좋은 곳이다. 여기 내원암의 경우, 중창 불사하여 크게 앉아 있는 무량수전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는 아니다. 옛 내원암 건물 자리가 최고의 자리다. 거기서 동쪽을 바라보는 것이 천하의 일품이다. 뭔가 안타깝다. 기와, 나무 ,옹기조각을 이용하여 정갈하게 가꾸어 놓은 온갖 화초들과 무량수전에서 흘러나오는 여승의 독경소리를 위안 삼아 사리암으로 향했다. 깊고 높은 사리암 사리암 가는 길은 긴 낭만, 긴~긴 설렘의 연속이었다. 끝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깊고 깊은 골짜기 계곡 길은 속세의 찌꺼기가 사라진다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맑은 영혼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대단한 낭만을 던져주는 아름다운 계곡길이다. 물 흐르는 소리, 산새들 우짖는 소리, 신록이 속삭이는 소리, 바람이 가슴에 안기는 소리, 그리운 사람 그리운 소리, 온통 침묵의 소리뿐이다. 길고 긴 평지 길이 끝나자 큰 주차장이 앞을 막는다. 이제부터는 산길이다. 길은 가팔라도 차고 맑은 산바람이 불어와 상쾌했다. 수행하듯 한 발 한 발 천천히 올랐다. 소형차가 다닐 수 있는 시멘트 길이 끝나자 가파른 산 오솔길이 안기듯이 반겨준다. 성벽 위의 길 같은 느낌을 주는 좌우의 돌 축대가 정겹고 다정했다. 다 온 듯하면 아니고 이제는 하면 더 올라야 했다. 한참을 오른 후에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물이었다. 두어 바가지 들이켜고 숨을 고르고 올랐다. '나반존자(那畔尊者)'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독경이 울려 퍼지고 있다. 이미 기도처로 유명세를 탄 암자답게 건물도 크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옛날 사리암은 한 사람이 살든, 열 사람이 살든 살아갈 만큼만 쌀이 나왔는데 어느 욕심 많은 스님이 더 많은 쌀 나오라고 쌀 구멍을 넓힌 후부터는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나오고 있다고 한다. 관음전에는 바위굴을 향해 서 있는 스님의 독경 소리를 따라 불자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었다. 무엇을 빌까? 욕심을 버리면 극락인데…. 이 사리암도 부산 어느 독지가의 후원으로 이렇게 거대하게 지어놓았다. 차라리 바위 옆의 조그마한 암자였다면…. 이렇게 빌고 기도하지 않고도 걸어오는 자체로 마음은 고요한데…. 그리고 온 산의 동식물, 물과 바위에 흐르는 영혼과 침묵의 대화를 나누면 우리의 혼탁한 영혼이 맑아질 것인데…. 해는 서산에 넘어가고 꿈틀거리던 거대한 산들도 휴식의 달콤함에 빠져들고 있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데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를 외치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산을 울린다. 나반존자는 홀로 선정을 닦으며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의 복 밭이 되어 미륵불을 기다리는 존자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의 영혼을 맑게 닦고 있는가? 침묵의 운문사는 말이 없고 내려와 운문사에 들어가니 저녁 8시가 지났다. 어둠의 운문사는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운문사는 나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영롱한 별빛을 받으면서도 초롱초롱하지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았다.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강원답게 큰 규모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나는 침묵이 주는 육중한 울림의 운문사를 가슴에 안고 온몸으로 몸부림치며 천천히 걸었다.
문득 한 여인이 그 영혼을 송두리째 드린다 하면 한 여인이 그 살을, 피를, 내음을 송두리째 드린다 하면, 아아. 그대의 고독은 풀릴 건가.
문득 허영자 시인의 '바위' 시 구절이 떠올랐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사랑하여 설총을 낳았으며, 만해 한용운님이 아내의 몸부림치는 산고를 못 보아 출가했고, 경봉 선사가 속가에 아들을 두었듯이, 큰 스님들은 성과 속을 뛰어넘어야 거침없어지는가. 청담(靑潭) 스님이 고향 진주에 설법하러 갔을 때 어머님은 칼을 들고 소리친다. "스님이기 전에 너는 내 아들이다. 너로 하여 대가 끊어졌으니 이 밤중에 집에 가서 네 아내와 동침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 애미는 너 앞에서 이 칼로 목을 잘라 죽겠다." 그날 밤 아내와 합궁한 청담은 날이 새자 다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임신하여 딸을 낳았으나 청담의 어머님은 사내가 아니라고 아기를 우물에 던져 버렸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출가한 묘엄(妙嚴) 비구니는 운문사에 있고, 성철 스님의 딸은 불필(不必) 비구니가 되어 산 너머 석남사에 있다. 밤이라 찾지 않았으나 나와 인연되는 두 강사 스님이 있는데, 한 비구니는 얼마나 인상이 좋은지 어느 비구니는 나에게 "비구니인 자기들이 보아도 반했다"라는 말을 했다. 운문사를 내려오면서 온갖 옛 생각이 떠올랐다. 80년대 초 20대 대학생의 열정만 있고 문화의 안목이 설익었을 때 본 운문사는 온통 신비로움의 아득한 세계였다. 그리고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유홍준(현 문화재청장) 선생과 나는 대표와 총무가 되어 한국문화유산답사회원들과 함께 찬바람 가르는 청량한 운문사 새벽예불을 얼마나 가슴 졸이며 듣고 속진의 때를 벗었던가. 그때 단골로 드나들었던 아담한 한옥 민박집의 삼보식당은, 옛 건물은 헐렸지만 같은 상호로 매표소 옆에서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다. 이미 밤이 깊었는데 내가 왔다고 대구서 산다는 큰딸과 사위가 나왔다. 앳된 여고생이었던 큰딸은 마흔이 지난 중년이 되어 있었다. 닭도리탕에 동동주 한 사발로 옛 회포를 밤이 깊도록 풀었다. 아래 신원마을에는 착한 제자 권혜숙은 어디서 무얼 하며 의미 있게 살고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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