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웰빙 바람타고 나물이 돌아오고 있다
제 3장/ 구례의 산나물
1부: 식탁에서 나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병이 생겼다
2부: 나물은 빈곤의 상징? 세계에 자랑할 우리의 전통음식!
3부: 웰빙 바람타고 나물이 돌아오고 있다
12월 초, 나물 취재차 구례를 찾았다. 화엄사 아래 한 식당에서 산채정식을 주문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30여가지에 이르는 찬이 나왔지만 산채보다는 일반 반찬이 더 많이 차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에서 받아보기 쉽지 않은 많은 종류의 찬에 환호를 지르는 손님도 있겠지만, 난 어디까지나 산채를 먹기 위해서 산채정식을 주문한 것이다. 산채의 종류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수준 이하였다. 취나물이 빠진 나물반찬은 뭔가 혼이 빠진거나 다름없다.
취나물이 귀해서가 아니라 산채의 대명사일정도로, 우리 산야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채이기 때문이다. 되도록 산채 위주로 차려달라고 주문도 했건만, 밥상을 대하고 살짝 당혹스러웠다.
나오면서 슬쩍 물어봤다.
“예전에 비해 산채 먹는 손님 줄었나요?”
“네!”
식당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손님의 기호에 맞추자면 어쩔 수 없는 타협일 수 있다. 하지만 한정식도 아닌 산채정식도 아닌 어영부영 차리는 밥상은 자멸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식당에 들렀다. 이 집에서는 싸리버섯탕을 주문했다. 나오는 찬을 보니 오히려 이 집이 더 산채정식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구례까지 와서 산채정식을 맛보고자 하는 것은, 여러가지 반찬을 맛보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일상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산나물을 먹고자 하는 손님의 심정을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산나물농업의 현장을 찾아
△ 국내 최대 산나물단지인 '산채원'을 일구고 있는 김규환씨가 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산채원에서는 최대한 자연적인 조건에서 산나물을 길러 맛과 향, 약효까지 온전히 유지하고자 한다
구례에서 화순으로 넘어갔다. 화순 북면 양지마을에 산나물농사꾼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산채원’이라는 산나물 단지를 가꾸고 있는 김규환(42)씨가 장본인이다. 그는 서울에서 살다 3년전 귀농하여 백아산 일대 20만여 평에서 갖가지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 종류만 해도 200여종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이만하면 산나물백과사전이 자연에서 펼쳐져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찾아간 날 그는 5명의 인부들과 함께 야생화(벌개미취)를 심고 있었다. 5일째 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유를 묻자 단지 내에 순환코스를 만들어서 관광객들이 등산이나 산책을 하면서 나물이나 꽃도 구경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말이 꽃이지 사실은 나물이고 약초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는 왜 산나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단순히 산나물을 재배해 판매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있었다. 한국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고 그대안을 찾고자 노력하는 게 보였다.
“과거에 우리가 즐겨먹었던 게 나물이잖아요. 하지만 잊혀진 농업이 되고 말았어요. 한국 농업은 현재 양돈, 양계, 한우, 쌀농사 등 주요농업이 열서너가지 되잖아요. 앞으로 큰 나라 농업이 들어오면 절반은 사망하게 되요.
그랬을 때 돌파구가 무엇이냐? 하면 결국 우리 소유의 산나물이 아니겠는가 해요. 무론 밭에서 논에서 관행농법식으로 재배는 하고 있지만 저는 산으로 가지고 들어가고자 해요.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 약효를 지닌 산나물을 생산해 내면 국내 산업의 한 부분이 될 것이고, 또 외국과 경쟁해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어쩌면 산나물이야말로 진정한 블로오션 산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먹을거리는 결국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산나물 조미료도 만들 예정입니다. 또 산나물을 단순히 맛보는데 그치지 않고 보고 즐기는 차원에서 산나물판소리도 생각하고 있구요.
산나물 판로는 백화점이나 마트쪽은 검토하고 있지 않아요. 헐값에 팔려나가는 걸 원치 않거니와 결국 종속적인 관계가 될게 뻔하닌까요. 대신 소포장위주로 직거래를 하고자 해요. 가장 크게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산나물축제예요. 내년에 각분야별로 만명을 초청해 축제를 치르고, 내후년부터 점차 늘려나가면 지역경제를 살리고 인구유입효과도 거둘거라고 봅니다.”
화순 북면은 김규환씨에 영향을 받아 현재 산나물 농가는 8가구로 늘어났다. 또 북면은 산나물을 특화사업으로 지정했다.
“양지마을은 골짜기이고 가장 못사는 동네잖아요. 산나물 산업을 일으켜서 하나의 모델을 세우고 싶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산나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동안 산나물은 전통음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전통농업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백아산자락에서 풍기는 산나물의 향기가 모든 이의 식탁에서 풍기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먹을거리가 불신인 시대에 설마 우리의 전통농업마저 배신하지는 않을 거란 믿음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