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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룡사지

성수농원 2008. 8. 19. 22:10
[삼국유사 흔적을 찾아서] (27) 서라벌의 중심 황룡사
몽골 기마병에 밟힌 국찰 빈 벌판위에 영욕의 흔적만
/글.사진 이재호 기행작가
2006/10/26 035면 10:21:22   |프린터 출력 |뉴스 배달서비스

사진 설명:거대한 장육존상이 서있던 금당터와 목탑지.
# 가을을 안겨준 비

잔뜩 찌푸린 하늘은 오후가 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마침내 울음을 토해버려 온 대지가 흥건하다. 한번 흘린 눈물은 주체할 줄 몰라 소리없는 흐느낌으로 변해 기와 지붕을 타고 또닥또닥 낙숫물이 마당에 떨어지고 댓잎을 적신다. 가을 가뭄으로 산천초목이 목말라할 때 촉촉한 비는 영혼을 적시는 감로수가 되어 고요한 침묵 위에 적막마저 잠재우고 있다. 세상 어느 아름다운 음악이 이 밤의 가을비 낙숫물 소리에 비길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숨 가쁜 스케줄이었다. 이제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나 홀로 이 글을 읽을 독자 분들께 맑은 영혼의 아름다운 글을 전하고자 밤비 맞으며 황룡사 편을 어떻게 쓸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황룡사는 삼국유사 기록만 해도 여러 편이고 불국사,석굴암보다 많은 사연을 안고 있어 몇 회를 연재할 수 있지만 1회로 끝낼 생각이다. 단 눈 쌓인 추운 겨울이 오면 헐벗은 거지 여인이 애기를 낳고 얼어 죽을 지경이었는데 자신의 법복을 다 벗어주고 맨몸으로 달려 돌아간 황룡사 정수 스님 이야기를 한 편을 더 쓰고 싶다. 평소에 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는 황룡사에다 관계 기록을 한 번 더 살펴보면서 이 밤을 밤비와 지새우고 내일 현장을 찾아 글을 써야겠다.

# 다시 찾은 황룡사 절터와의 인연

삼국유사는 진흥왕 14년(553) 2월에 대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와,대궐 대신 절을 짓고 황룡사라 하여 17년 만에 담장까지 공사를 했으며,진흥왕 25년(574)에 주존불을 만들었고 선덕여왕 15년(645)에 황룡사 탑을 세웠는데 고려 고종 25년(1238) 겨울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버렸다고 기록해 놓았다. 총 93년이 걸려 이 절을 완성했고 593년간 존재하다 폐허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간밤에 내린 밤비가 더위를 품은 가을 대신에 중년의 완숙함 같은 성숙한 가을을 남기고 떠나갔다. 원래 황룡사지는 중문이 있었던 남쪽으로 들어가야 정상이지만 지금처럼 분황사 앞길을 통해서 들어가게 하는 것은 거꾸로 들어가게 하는 것으로 그것이 우리시대 문화 수준이다. 우측의 기다란 당간지주는 절 뒤에 있을 수가 없기에 황룡사 것은 아니고 분황사 것일 가능성이 많은데 오른쪽 날개와 왼쪽 엉덩이가 잘린 모습으로 꺼벙하게 모든 걸 포기한 채 누워 있는 거북이가 정겹다.

2만5천 평이나 되는 동양 최대의 황룡사는 건물 하나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바람은 황량한 벌판으로 향하는 나를 등 뒤에서 떠밀어 주었다. 군더더기 없이 교양 있게 절터를 정비해 놓아 폐허의 미가 주는 깊은 울림은 없고,온갖 상상과 바람의 숨결소리를 들으면서 느낌을 받는 수밖에 없다.

천천히 걸어 중심부 금당 터에 왔다. 여기가 서라벌의 중심이다. 동으로 보문단지와 토함산 줄기가 보이고,남으로 남산이 부드럽고 장쾌하고 굽이치고 선도산이 서쪽에서 해를 이고 있었고,북으로는 아파트가 경주에는 어울리지 않게 막아섰지만 소금강산이 옛 그대로 있다. 나는 지금 바람 부는 황룡사지에 앉아 인연을 생각했다. 간간이 내가 출연한 TV방송을 보고 20몇 년 만에 연락을 해오는 군대 선·후배부터 인연은 다양하다. 엊그제는 국민은행 부산 대청동 이종재 지점장이 초등학교 동기라 지점직원들을 데리고 우리집에서 자고 기행까지 하는 문화체험을 누렸다. 그런데 직원 중에 남세근 팀장은 20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그때는 연세대 축구부 주장할 때였는데 프로팀 대우로얄즈에 갔다가 국민은행 축구부로 옮겨 지금까지 은행에 근무하고 있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근이는 잔주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선량한 마음에 순진한 살인 미소 그대로인데 나는 세파에 더 많이 시달렸는지 잔주름이 훨씬 많아졌다. 그는 나를 주위를 다정하게 챙겨주고 술도 아름답게 마시던 모습과 모든 것이 변함없이 똑같다 했다.

또 얼마 전에는 명지대 미술사학과 학부생 대학원생과 교수들이 우리집 숙소에 2박3일 경주기행을 왔다. 첫날 이 황룡사지에 와서 나와 20년 전부터 전국을 함께 기행 다녔던 이태호 교수가 현장설명을 하고 내가 뒤를 이었다.

"대궐을 짓다 황룡사를 지었으니 보통 절과는 다른 국찰이라 아무나 주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왕족 출신 자장 스님은 주지를 할 수 있었지만 6두품 출신 원효 스님은 겨우 분황사 정도의 사찰에서 주지를 할 수 있었다. 철저히 계율을 지키는 자장과 달리 거침없이 자유로운 행동에 다른 스님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원효였기에 여기 황룡사 강당에서 설법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불가능했으나 기회는 왔다. 대안 스님의 추천을 받은 원효는 왕과 신하들,내로라 하는 스님들 앞에서 유명한 '금강삼매경론'을 완벽하고 드라마틱하게 설법했다. 삼국유사에는 자장이 이틀 밤낮 '보살계론'을 설법할 때는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고 구름과 안개가 강당을 덮었다 했지만 원효가 할 때도 지금처럼 눈물의 바람이 불었을 것이고,듣고 있던 모두는 가슴을 울렁이는 신음을 토했을 것이다. 세상에 장·단점은 없다. 흔히 장점이라는 얼짱 몸짱 공짱 학짱 돈짱이 오히려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 항상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실력을 닦아놓으면 언젠가는 기회와 인연이 온다. 설사 오지 않더라도 이미 성숙한 자신과 일가를 이룬 경지라 세상에 감동을 줄 것이 너무 많다. 삶이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혼신의 힘으로 열심히 하길 다 같이 노력하자. 남에게 감동을 주려면 자기가 감동스러워야 된다. 대화를 할 때도,밥을 먹을 때도,공부할 때도,사랑할 때도,키스할 때도 감동스럽게 하라." 그렇게 끝맺으니 어느 덧 해는 상기되어 선도산에 붉게 걸려 있었다.

듣고 있는 학생 중에는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1학기 학생 때 2박3일 경주기행 왔던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15년이 흐른 이제는 중년의 여인이 되어 한국은행의 한은갤러리에서 큐레이터를 하면서 이 대학 박사과정의 학생으로 와서 현장 강의를 또 듣고 있는 것이니,세상사 인연의 소중하고 아름다움은 지금 서쪽 하늘의 노을만큼 아름답다.

# 불기둥은 하늘을 삼키고

13세기 유라시아 온 대륙을 초토화시키던 북방 유목민 몽골은 말의 기수를 고려로 향했다. 결국 경주까지 침입하여 이 황룡사가 불길에 싸였다. 몇날 며칠을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을 삼켰을 것이다. 그때도 오늘 같이 세찬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경덕왕이 아들을 못 낳는다고 쫓아버린 왕비 삼모부인의 후원금으로 성덕대왕신종보다 4배나 더 큰 49만근에 이르렀던,그 뒤 규모를 축소하기는 했지만,그 황룡사종이 황룡사가 불탈 때 목놓아 울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금당지에는 장육존상도 있었다. 인도 아육왕(아쇼카왕)이 황철 5만7천 근,황금 3만 푼을 가지고 석가의 3존상을 만들다 실패하고 인연되는 땅에서 만들기를 기원하여 배에 실어 보낸다. 그 배가 하곡현 사포(지금의 울산)에 닿아,1만198푼의 황금으로 무게가 3만5천7근에 이르는 장육존상(1장6척,4.8m)을 만들었는데 그 장육존상도 몽골 침입 당시 눈물을 흘리면서 불기둥에 녹았을 것이다. 그리고 백제 장인 아비지가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고 눈물을 흘리면서 세웠던 저 앞의 80m 높이의 황룡사 9층 목탑도 하늘에 울부짖었을 것이다.

일어나 다시 목탑지로 가 보니 중심축을 잡았던 30t이 된다는 심초석이 옛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이 목탑지와 금당터에 우리시대 세워놓은 설명판은 낡고 떨어져 나가 글씨도 탈색되어 바람에 너덜너덜 나부끼고 있었다. 황룡사를 복원한다고 계획 중인데 쇠못 하나를 안 쓰고 80m의 목탑을 세울 실력이 지 의문이다. 갑자기 먹구름이 하얀 해를 안고 가버렸다. 한 칸의 기차가 외로운 소리를 내면서 울면서 지나간다. 하늘도 슬펐는지 후두둑 비가 떨어진다.

출처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글쓴이 : 무심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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