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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붕없는 박물관....경주

성수농원 2008. 8. 24. 15:42

누군가가 경주를 일컬어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했던가?

천년의 古都 서라벌...   경주(慶州)...

수학여행의 기억속에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이 혼재되어 있는곳이다.

좋은 기억이란 난생처음 그렇게 멀리 떠난 여행에 대한 충격적인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것이고

나쁜 기억이란 여관방에 십여명씩 몰아넣고 허접한 식사로 단체객들에게 폭리를 취한것에 대한 분노 같은것~

 

그저 휘- 돌아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틀을 머물며 발닿는 대로 신라를 찾아보았는데 당연히(?) 불국사부터 둘러보았다.

 

 

■ 불국사(佛國寺)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천년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大相 김대성이 부모를 위해 창건하였으나 완성 못하고 죽자 나라에서 완성시켰다고 한다.

 

<불국사 일주문...  검표소 역할을 하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잘 정비된 화단과 보행로가 나오는데 어쩐지 한국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ㅇ 청운교/백운교, 연화교/칠보교...

 

전체적으로는 경사진 지형에 대규모 석축을 쌓아 평지를 만들어 대웅전을 짓고 앞마당에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웠으며

그 석축을 올라 대웅전으로 가는 石橋가 유명한 청운교, 백운교이며 극락전으로가는 가는 石橋가 연화교, 칠보교이다.

그 옛날 처럼 청운교, 백운교를 걸어 올라 대웅전으로 가고 싶었지만

문화재보호 차원에서 그 멋지고 귀한 石橋를 밟을 수 아쉬울뿐이다.

 

100여m에 이르는 광대한 석축을 바라보면 오른쪽이 청운교, 백운교... 왼쪽이 연화교, 칠보교이다.

연화교, 칠보교는 극락전에 이르는 안양문과 연결된 돌다리로 세속인들이 밟는 다리는 아니었다.

전체는 18계단으로 아랫쪽 연화교가 10계단, 윗쪽 칠보교가 8계단이며 연화교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칠보교에는 칠보를 조각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오른쪽 청운교, 백운교가 웅장하다면 연화교, 칠보교는 섬세한 느낌을 준다.

 

<연화교, 칠보교...>

 

 

윗쪽이 청운교, 아랫쪽이 백운교로 모두 33계단이며, 33天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33가지의 단계를 상징하는것으로 수도자들이 고난을 겪으면서 결국 부처의 세계에 오르게 되는 다리를 상징하며

청운교 아래는 무지개 형태의 홍예를 만들어 참 멋지다.

(청운교와 백운교의 위치, 즉 上, 下가 주장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청운교, 백운교를 걸어오르면 자하문을 지나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에 이르게 되는 구조이며

원래는 다리아래에 구품연지(九品蓮池)라는 타원형 연못이 있었다고 하며

자하문이나 범영루가 수면에 비쳐 무척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리라....

 

<청운교, 백운교...>

 

 

<청운교, 백운교 앞마당에 당간지주가 서 있다...>

 

ㅇ 다보탑, 석가탑...

 

대부분의 사찰은 대웅전 앞에 하나의 탑을 세우는것이 보편적인데 (1塔 1金堂)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왼쪽에 석가탑, 오른쪽에 다보탑이 서있어 1塔 1金堂의 상식(?)을 깨고 雙塔 1金堂의 구조를 갖고 있다.

 

<대웅전.... 석가탑과 다보탑....>

 

동쪽(오른쪽)에 있는 탑이 다보탑이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석탑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높이 10.4m의 대표적인 이형석탑(異形石塔) 양식을 갖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돌사자는 사방에 하나씩 4마리여야 하지만 현재 1마리만 남아있고 3마리의 행방은 묘연하다.

일제시대에 상태좋은 3마리는 수탈해가고, 상태가 않좋은 1마리만 남아있다고 한다.

 

<다보탑...국보 제20호>

 

 

석탑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미세한 조각표현을 구현한 탑신부....

 

석가탑은 대웅전 왼쪽(서쪽)에 다보탑과 마주 보고 서 있는 3층석탑이며 높이는 8.2m이다.

다보탑이 미세하고 정교하고 화려한데 비하여 석가탑은 석탑에 아무런 조각없이 간결하고 소박하다.

특히나 각 부분의 비례미가 안정적이고 우아하며 균형미를 갖추고 있어 통일신라 석탑의 대표격이다.

아사달 아사녀의 전설이 깃든 탑이기에 무영탑이라고도 불리운다.

 

<석가탑... 국보 제 21호>

 

 

ㅇ 그밖의 불국사 이모저모...

 

대웅전을 둘러싸고 회랑이 이어져 있다. 마치 경복궁처럼~~

 

 

사찰에는 루각이 있고, 거기에는 북, 목어, 운판, 법고....즉 사물(四物)이 있는데

이는 소리를 내는 공양구로서 소리를 통해 세상의 모든생명을 구제해보자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목어(木魚)와 운판(雲版).... 물속에 사는 중생과 하늘에 날아다니는 중생을 구제~~  (북과 종은 잘 아시니 생략..)

 

불국사 절집의 지붕들......  멋진 실루엣이다.

 

 

보물 제61호 '광학(光學)부도'... 일제가 수탈하여 도쿄 요릿집 정원에 있던것을 1933년 되찾아 왔다고 한다.

 

불국사 종....

한국의 종들은 매다는 고리가 용이 비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종을 매달은 것이 싸구려 철제체인이다....

보다 세련되게... 신소재로 깔끔하게 할 수는 없는걸까?

 

이 종이 박정희 대통령 신종이라 불리웠던 그 종이 아닌지 모르겠다....

 

 

 

 

■ 토함산 석굴암(石窟庵)

 

동해를 바라보는 해발 725m의 토함산 중턱에 자리한 석굴암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던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짓기 시작해

30년에 걸쳐 완성한 석굴사원(石窟寺院)이다.

 

그러나 石佛寺의 石窟이라 해야지 石窟庵이라고 함은 잘못 부르는것이라는 설도 있다.

즉, 암자가 아니고 석굴사원이라는 것이다.

설명을 듣자니 수긍이 가는 주장이었으나 지금 석굴암은 밖에 목조건물을 지어놓고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벽 내부에 가두어 놓았으니 석굴암도 석굴사원도 아닌 셈이다.

 

어쨌거나 옛날 수학여행때는 일출도 볼겸 새벽에 일어나서 산길을 한참 걸어 올라온듯 한데

석굴암 일주문까지 도로가 잘 닦여 있어 편히 올라 간다.

 

<석굴암 일주문......접이식 경비용 철책과 전혀 안어울린다.>

 

숲길을 십여분 걸어가면 낮으막한 산중턱에 석굴암이 보인다.

과거에는 개방형 석굴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목제건물이 보호각 역할로 전체를 씌워져 있고

봉분처럼 보이는 성토부분이 아마 석굴암의 돔 지붕을 덮은 곳으로 보인다.

 

 

 

저 문을 들어서면 다시 석굴암쪽은 유리벽으로 막혀있다.

물론 실내는 사진촬영 금지... 불자가 예배목적이 아니면 유리벽 안으로 들어갈수도 없어서 밖에서 훔쳐보듯 둘러보고 나와야한다.

자세한 설명도 부족하거니와 설명이 있었다한들 실물과 대조해볼수도 없다.

 

홧김에 밖으로 나오니 정면 앞마당에 커다란 연꽃무늬 석등 받침석이 있다.

석굴암대신 바닥에 있는 석등 받침석이나 한 커트 찍을 밖에~~

 

석굴암은 발굴이래 몇차례의 대규모 보수공사를 겪었는데 그때 교체한 부재료 들이다.

 

 

절집에서 손쉽게 개축이나 신축비용을 충당하는 수단이 기와불사...

어느 절이건 기와불사가 없는 곳이 없다.   외국인들도 많이 동참하고 있었다.

 

 

■ 임해전지 (안압지)....

 

통일신라시대 별궁안에 있던 것으로 문무왕때 궁안에 못을 파고 인공산을 만들고 화초를 심어 가꾸었다고 하며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해 임해전(臨海殿)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이다.

연못 이름은 원래 月池였는데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라고 부르며

그 임해전이 있던곳이라 臨海殿址라고도 부른다.

 

 

 

 

 

 

■ 고분(古墳)...

경주 시내와 외곽 일대로는 수많은 고분들이 산재해 있다.

가정집 옆으로도, 도로변 길가에도, 구멍가게 뒷쪽으로도 오붓하게 솟아있는 고분들이 보인다.

특히 시내 한가운데에 대릉원이 있어 천마총등 대표적인 고분을 볼 수 있다.

 

경주에서 고분군(23기) 규모가 가장 커서 대릉원이라 하는데

경주시내에서 가장 큰무덤이 있고, 이곳이 황남동인지라 '황남대총'이라 부르는 대규모 고분과

김씨중 첫번째 왕에 오른 미추왕릉이 같이 있다.

경주빵보다 더 유명하다는 황남빵이 이곳에서 만들어져서 그렇게 불리운다.

 

<황남대총과 미추왕릉>

 

그러나 이곳의 진면목은 '천마총'에 있다.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가 출토되어 천마총이라 이름 붙였는데

현재 내부가 공개되어 안으로 들어가 무덤의 구조를 돌아볼 수 있다.

 

<천마총...>

 

 

<잘 생긴 여인의 젖가슴처럼 예쁘기만 한 고분군... 첨성대 옆에 있었다.>

 

 

■ 국립 경주박물관

 

경주 전체가 지붕없는 박물관이라고는 하나 경주에 들려서 박물관을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작고 불편한 박물관이었다.

전시물도 그렇고... 건물구조도 그렇고... 휴식공간이나 화장실등이 너무 불편했다.

특히 화장실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전근대적(?)인 구조였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귀면상받침석... 2마리의 거북이 함께 있는 것이 낯설어 걸음이 멈춰진다>

 

박물관 건물 밖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이다.

성덕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 아들인 경덕왕이 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다시 그 아들인 혜공왕에 이르러 완성되어 봉덕사에 둔 관계로 봉덕사 종이라고도 한다.

 

30여년에 걸쳐 12만근의 구리로 만들어져 총무게가 18.9톤에 이르는 大鐘이다.

에밀레종의 슬픈 전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

종신에 돋음으로 새겨진 비천상 조각이 매우 아름답다.

 

<성덕대왕신종...>

 

<금강역사상과 대형 석등....>

 

<고선사터 3층석탑....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 첨성대

 

선덕여왕때 축조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천문대...   첨성대를 일컫는 말이다.

하단에서부터 올라갈수록 원형의 지름이 줄어들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어 외형이 아름답다.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것이라 하며 상층 정자석 길이가 하단 기단부 길이의 절반으로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첨성대....>

 

 

이틀로는 경주를 돌아보기에 역부족이다.

몇번 더 다녀오려 한다.   계절도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경주 구석구석을 돌아보리라....

 

일단은 1차 답사를 마친다.

 

 

 

 

 

<출처;yahoo apple125 (h125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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